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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오류.

작성자 jd 작성일 2017.03.21
일반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완전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의 사람들의 생각은 자신의 생존과 번영의 본능을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충돌하면 그는 다른사람이 자신의 생존과 번영을 공격한다고 착각하게 된다.
이는 자신의 생각이 자신의 육체적 본능에 좌우되어서  동물화한 것이다.

우라가 본능적인 것을 생각한다고 할 수 없다.
나는 욕망한다. 그리고 생각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
욕망은 욕망이고 본능은 본능일 뿐이지 그것은 생각이 아니다.

그러면 내가 생각하는 생각이란 무엇이냐?

인간은 사람(한계적인 육체를 지녀서 생존본능과 욕망을 지닌 생명체)과 사람사이의 관계로 존재한다.
인류가 멸망하지 않기 위해선 인류는 모든 사람과의 관계로서 존재해야 한다.
그래서 인류속의 내가 나의 본질이고 인간의 본모습이다.
이는 신의 사랑과 같다.

생각이란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서 나와야 하는 것인데 사람은 인류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생각도 인류보편의 생각이 나와야 한다.
첫째 생각이란 인간의 육체적 유한성을 부정해선 안된다.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지, 인간이(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생각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 인간을 생각하면서 동물에서 신에게로 가까워지는 것이다.


즉 사람의 동물성에서 점차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동물은 유한하므로 식욕 성욕 권력욕등의 욕망을 하고 그러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생산을 증가시키는 질서를 도입하는 것이다.
식욕에서 자유로워지게 된 이유는 농업생산의 증가에 따른 것이다.
수렵에서 농업생산으로 또한 각종 과학기술에 힘입은 산업생산에까지 더해서 농산물의 생산은 급속히 늘어나게 되었다.
인간의 생존을 위한 욕망인 식욕이 고통으로 인식됐던 것이 농업생산증가로 인해서 식욕은 행복으로 전환되었다.
이렇듯 인간욕망이 생산성증가를 거쳐서 고통에서 행복으로 전환을 이룬 것이다.
이것이 인간욕망에서의 자유함이다.
인간욕망을 긍정하고 극복함으로 행복에 이른 것이다.
여기서 인간욕망의 긍정이라는 현실긍정이 먼저 작용한다.
현실긍정을 인식하고 나서야 그것을 바꾸겠다는 생각이 나온다.
생각은 현실긍정에 바탕해야 하고 뒤에 말하겠지만 인류긍정에(신성에) 바탕해야 한다.
생각이 현실을 바로보고 현실을 긍정하고 그것을 인류와 인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바꾸겠다는 생각이 일고 그 생각이 진행되는 과정이 진보이다.
생각이 절차를 통해서 진행되는 중간에 특정 개인의 인간 존엄성이 침해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 작용함을 증거하게 된다.
이는 회개의 교정과정을 다시 거쳐서 피드백해야 한다.

생각은 행동을 만들어내고 행동은 연속된 습관이나 관행 유행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생각이 행동으로 지속적으로 나타나게 되면 행동만 있을 뿐 생각 자체는 사라지게 된다.
처음에 생각이 나온 이유는 인간과 인류를 보다 자유롭게 하기 위함이었는데 생각이 행동화됨에 따라서 그런 관행화된 행동이 인간과 인류의 존엄성을 침해하는데도 그런 잘못된 행동을 지속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회개해야 한다.
회개는 처음의 잘못된 생각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것을 교정하여 잘못된 행동이 나오는 생각이 올바른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런 피드백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사람들은 습관의 동물로 잘못된것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결코 벗어나기가 힘에 겹게 된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은 행동으로 연결되고 일로 연결되고 직장으로 연결되어서 운명화됐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바꾸려면 누군가의 운명을 바꾸어야 한다.

이렇게 습관화되고 운명화된 생각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집단주의 전체주의라고 한다.


둘째, 인간의 생각은 인류에 바탕하여서 나와야 한다.
이는 신의사랑이다.
인류에 바탕한 생각이 국가로 축소되면 모든 국민의 이익에 바탕한 생각이 되고 이는 법이 된다.
여기서 모든 국민의 이익은 무엇이냐 그것은 모든 국민이 원하는 것이냐 결코 그렇ㅈ ㅣ않다.
다수의 국민이 원하면 무엇이든 한다는 주장은 대게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가 그런 소릴 한다.
법은 국민이 원하지 않더라도 지켜져야 할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전 국민의 자유와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 법이다.
모든 국민이 자유롭고 존엄하기 위해선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강간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등과 같은 법이 세워져 있어야 한다.
즉 신이 모든 인류를 다스리듯이 법은 모든 국민을 다스린다.
한국인이 법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면 법의 지배를 받아들여야 한다.
법을 부정하고 내치는 자는 법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없는 자로 그들을 먼저 법의 지배에 무릎꿇리는 것이 우선이 되야 법의 기강이 선다.
법을 부정하고 이용하려는 자가 법을 집행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막아야 한다.

신의 사랑이란 모든 인류를 생각함에 있다.
이는 인류가 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원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이는 국민이 원하는 것일(민주주의) 수도 있고 국민이 원하지 않는 것일(법치) 수도 있다.
한데 국민이 법의 보호를 받고자하면 법의 지배를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민주주의보다 법치가 우선이다.

생각은 이렇듯 인간과 인류에서 나오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말한다.
생각이 인간의 유한성을 벗어나면 무용한 것이고,
생각이 인간의 본능에만 치우치면 역시 동물적인 것으로 생각이라고 할 수도 없다.
생각은 인간의 동물적본능을 긍정하고 인정하여,
그를 극복할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할 수단은 집단화아여 약탈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증가를 통해 인류를 유익하게 함에 있다.

그래서 생산성질서야 말로 인간을 동물로 추락시키는 것을 막고 신에 가깝게 한다.